흑백요리사2를 보며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가 이제 단 한편만을 남기고 있다. 최근 TV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챙겨보는 <냉장고를 부탁해> 출신 쉐프들도 나오고, 관련 컨텐츠들도 많고, 시즌1도 재밌게 봤다보니, 시즌2도 역시나 나올 때마다 바로바로 찾아보고 있다. 아무래도 스케일이나 기획 면에서 시즌1에 비해 더욱 발전한 모습이라, 감사하게도 매주 즐겁게 시청하고 있다.
다만 쿡방이나 먹방 등을 원래 전혀 찾아보지 않았던 입장에서, 내가 이 흑백요리사를 왜 재밌게 보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글에서 흑백요리사의 성공 요인을 진지하게 분석하려는 건 아니다. 결국 어떤 작품이든 잘 된 이유는, 그냥 재밌게 잘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냉부의 경우에도 그냥 프로그램의 주제가 요리일뿐이지, 결국에는 예능적으로 재밌어서 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요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이 특히 타율이 좋은 이유를 생각하다보니, 생각의 방향이 어느 한쪽으로 향하게 되어서, 그걸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물론 말이 생각 정리지 그저 두서없이 써내려 갈 예정이다.
요리를 주제로 한다는 것
요리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과 다른 작품들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것에 대한 평가를 시청자들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악, 미술, 스포츠, 하다못해 비디오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직간접적인 경험과 그를 토대로 한 주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음식만큼은 그게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시각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는 알 수 있을지언정, 가장 근본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할 맛과 향을 시청자가 절대 느낄 수 없다는 것에서 다른 주제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래퍼의 랩을 듣고 '구리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요리사가 방송에서 만든 음식을 보고 '구리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만드는 과정과 재료를 통해 어떤 맛일지 유추해 볼 수는 있지만, 그마저도 심사위원의 입에서 '예상과는 다른 맛'과 같은 평가가 나오는 순간 그 예상은 쉽게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즐기기 위해서, 심사위원의 잣대와 말의 권위에 올라타게 된다. 어찌보면 그저 한 개인일뿐인 그 심사위원들의 판단이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미식 평론가들의 세계와 그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심사위원과 일반인의 괴리
개인적으로 두 시즌을 보면서 가장 메타적으로 재밌었던 것은 팀전이었는데, 팀전의 경우 두 심사위원의 권위가 다른 일반인 심사위원들과 동일하게 낮아져 그들과 같은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그런데 팀전의 평가를 보면, 두 심사위원과 일반인들 사이에 어느정도 괴리가 있음이 보인다. 물론 두 심사위원도 시리즈 안에서 평가기준이 서로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심사위원들의 권위가 내려가고 오히려 직관적인 입맛으로 일반인들을 공략해야하는 팀전에서는, 두 심사위원이 거의 비슷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성재씨는 애초에 미슐랭 기준으로 최고의 평가를 받은 사람이고, 백종원씨는 여러 논란으로 그의 심사위원 자격이 도마 위에 오르긴 했지만, 아무래도 근본적으로 자본가이고 여러 미식 경험이 일반인에 비해 많을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즉 대부분이 일반인인 우리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실제로 느끼고 평가할 수 없는 요리라는 매개체를, 우리와 괴리가 있는 평가 기준을 가진 권위자들의 평가를 통해 써내려가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메타적으로 재밌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넘어감의 미학
조금 다른 얘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SF물, 예를 들어 좀비물의 경우 좀비의 발생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작품이 있고, 그냥 좀비라는 게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작품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의 경우 정말 논리적이고 깔끔하다고 생각해본 작품이... 정말 단 하나도 없다. 차라리 후자처럼 원래 그런게 있다는 듯이 넘어가는 작품이 좋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듯이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요리 서바이벌은 작품에 대한 평가와 그 평가에 대한 의심을 애초에 요리라는 주제 선정에서부터 막아놓음으로서, 시청자가 캐릭터와 드라마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 참으로 매력적인 것 같다.
만약 같은 포맷으로 요리가 아니라 현대미술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과연 미술계의 안성재와 미술계의 백종원의 심사에 어떤 댓글들이 달렸을까? 나는 우리 대중들이 대부분 현대미술이나 힙합과 같은 그사세에 대한 비호, 그리고 분야를 막론하고 평론에 대한 혐오와 불신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요소를 담뿍 담고 있음에도 이렇게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점으로 봤을 때 이 요리 서바이벌이라는 장르 선정 자체가, 창작자가 가져야 할 참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창작자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
창작자들은 대부분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자신들의 표현이 억제되는 것에 저항한다. 나는 이 방향이 절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한 파도는 개인의 소리를 쉽게 삼켜버리기도 한다. 결국 창작자의 표현을 방해하는 사회적인 제약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해왔다. 이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바꾸기 보다는 방법을 바꾸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종의 특성을 통해 인간군상을 표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종차별이 된 세상이라면, 우리는 멋지게 <주토피아>를 만들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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